나는 민둥산을 좋아한다. 여러이유가 있지만 굳이 한가지를 꼽는다면, 기차를 타고 등산로 코앞까지 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억새축제를 떠올리지만, 억새가 절정일때 민둥산을 가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딱 한번이면 족하다. 억새만큼 사람이 있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이때쯤의 내 마음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직을 시도하지만 지금 회사보다 큰 메리트가 없었다. 간혹 누구나 부러워하는 업체와 연결되어도 전공으로 인해 미끌어지곤 했다. 서른살 초중반이면 누군가는 아파트를 사고 안정된 직장에 가정을 꾸린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상은 저만치에 있는데 나는 늪에서 허우적 거림을 반복하였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하지만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어설프게 갔다가는 대관령 동태마냥, 아침 뉴스에 '민둥산에서 의문의 변사체 발견,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동사' 의 기사로 비박인들의 오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퇴근하면서 미리 시뮬레이션 한대로 베낭에 텐트를 묶고 두꺼워보이는 옷들은 다 쑤셔넣는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입김이 안경앞을 가린다.
내것이 아니다. 내 텐트는 이보다 더 열악하고 미적 감각이 없다. 민둥산은 1,000 고지가 넘는 산중 몇안되는 비박이 법적으로 가능한 산이다. 정상에는 비박인들을 위해(내 멋대로 해석했다) 데크가 마련되어 있고 정상을 앞둔 몇몇 포인트에도 데크가 설치되어 아주 쾌적하게 비박을 할 수 있다. 이 장소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석양이 질때쯤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뒤로 밀리고 결국에는 수풀을 헤치고 장소를 찾아야 한다. 능선이 아닌곳은 위험하기도 하고 굳이 그곳에서 텐트를 칠 메리트가 없다. 내 경우는 즉흥적으로 떠났기에 이미 시간이 늦어 증산초교 출발점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에 올라 일출을 보기로 했다. 정상에 위치한 데크에서는 나 역시 비박을 해본적이 없다. 언제나 그곳은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tip. 콘크리트 바닥에서 한겨울에 텐트를 치고 잔다는건 미친짓이다. 본인이 만약 많은 비박으로 인해 흙이나 데크가 지루해졌다면 '극한체험'으로 해볼만은 하다. 한껏 머금은 냉기를 텐트로 불어넣는다. 오리털 침낭에 5겹을(방한등산복+후리스+구스다운+고어텍스+헤비구스) 껴 입어도 살을 저미는 냉기로 인해 10분이상 잘수가 없다(냉기차단용패드를 깜빡했다. 아이고 미련아). 정확히 10분자고 깨고를 30번정도 반복한다 "에이 안자고 만다!" 하고 텐트를 접고야 만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바로 앞에서 모든걸 만끽한다. 텐트안 랜턴 불빛이 참 이쁘다. 하지만 그만큼 들고 올라와야할 짐도 많아진다.
일출과 달이 공존한다. 이 맛에 일출을 보러 다닌다.
호기롭게 일출을 보러 왔지만, 매서운 바람과 등산복정도는 우습게 통과하는 한기에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내려가게 된다. 하나 팁이 있다면 일출을 보려면 '이렇게 가져가서 다 입을려나?' 할정도로 방한품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힘들게 올라와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일출을 포기하기에는 노력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서서히 여명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 한샷을 위해 캄캄한 어둠속에서 이들은 그리 떨었는지 모른다.
어느덧 햇살이 산 정상을 가득 채우고 구름의 색도 푸르게 변한다.
날씨는 겨울이지만 아직 가을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산이 좋다. 사시사철 언제 가도, 잘왔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 장소 : 민둥산 비박 등산
-. 일자 : 2014/10
-. 기차 이동 : 청주역 - 민둥산역(제천 경유) _ 순수 이동시간 약 2시간 30
-. 소요시간 : 순수 산행 시간 왕복 약 4시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