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은 한 30번까지는 아니더라도 20번은 족히 다녀온듯 하다. 우선 청주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기도 하고 등산 코스에 따라 6~7개의 변등(變等)이 가능하다. 가끔씩 일하다가 가슴이 답답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반차를 쓰고 산행을 하거나, 야간 당직을 서고 나서 바로 속리산으로 달린적이 태반이다. 이제는 정상 직전의 깔딱고개 정도가 허벅지에 뻐근함을 느끼게 하지만, 천고지가 넘는 산이기에 등산 초보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이정표를 찍지 않으면 내가 어느 코스를 다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멍하니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눈썹과 같다하여 초승달. 허나 나에게는 깍아져 나간 손톱처럼 보인다.
더 이상 직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스페인어를 계속 공부하고 있었고 무언가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저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길 스스에게 위로하면서 산을 올랐다. 더 열심히 하면 더 멋지고 더 먼 거리의 경치를 볼수 있으니 딱 지금처럼만 하자고.
3~4초 사이의 파노라마가 가장 자연스럽고 멋있는것 같다. 욕심을 부려 수초동안 파노라마를 찍어봤자 깨지거나 늘려져 그저 그런 사진만이 남는다. 모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먼 곳에서 조금씩 붉은 색이 움튼다.
이런 흐리멍텅한 사진이 좋다. 멍하니 해를 응시하고 있으면 저절로 보정이 되는것처럼 사진이 움직인다.
문장대코스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다. 정상이 협소하기때문인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이른 시간에 오르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수 있다.
이른 시간이기에 곳에 따라 응달진 곳이 많다. 방구대장 뿡뿡이를 닮았다.
사진제목 : 쨍쨍쨍
햇살 줄기가 생명력이 넘친다.
이제 이 푸르름도 곧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붉은 옷으로 갈아 입을 것이다.
간혹 사람들이 묻는다. '또 속리산갔어?' '소백산은 지겹지 않아?' '월악산은 그만갈때도 되지 않았냐?'
개인적으로 산은 12가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매 월(月)이 가지는 매력이다). 오랜 궁핍함을 견뎌낸 생명력의 움틈은 4월중순~하순이 제격이다. 연두의 향연은 보는이에게 탄성을 자아낸다. 빽빽한 초록색은 여름이 한창일때 느낄수 있다. 되레 이 더운 여름에 무슨 산이라고 하겠지만 오히려 울창한 숲에 드리운 그늘사이를 걷다 잠시라도 쉬면 금새 땀은 식고 오히려 추위를 느끼게 된다. 가을은 어떠한가. 온갖 원색의 향연.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단풍을 즐기러 산을 찾는다. 모든걸 삼켜버릴 듯한 눈이 한껏 쌓인 설산도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 이유다. 특히 나는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찬바람만이 가득한 겨울 직전의 산을 좋아한다. 생명은 이내 꺼지고 다른 생명의 거름이 되는 그 현장은 삭막함을 넘어 황량하기까지 하지만 그 모습이 가장 진실하고 원초적이며 인간의 삶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산에 연민을 느낀다.
장소 : 속리산 장각폭포 - 천왕봉 코스 등반
일자 : 2010/9
이동 시간 : 1시간 반 _ 자차 이동
소요 시간 : 왕복 약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