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등산객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가볼만한 멋진 산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해 하고 있다. 날도 풀렸고 초록의 녹음이 만발했는데 세계 여행 준비에, 공부에, 직장에 도저히 틈이 나지 않는다. 다만 불만인 점은 언제나 슬럼프란 놈이 조용이 찾아와 마치 지 집인냥 떠나지 않는것이다. 주말에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산이나 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내장산을 가려고 했으나, 그 교통비가 만만치 않았다. 같이 가는 일행을 합해 4명이 갈경우 기차로 16만원이 왕복비로 사용된다. 그래서일행중 한명이 운전을 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하게 일정 전날 찾아본것이 치악산이다. 꽤나 많은 산들을 다녔지만 치악산은 가보지 못했다. '않았다'가 정확한 표현일것 같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산은 악소리 나게 힘든데, 볼게 없단 말이야.'
이를 신봉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볼게없다' 가 아니라 '악소리 나게 힘든데' 에 멈춰있었다. 그게 치악산을 가야할 이유인 것이다.
아침 첫차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반쯤 출발하는 기차에 오른다. 제천에서 경유를 하는데 이상하다. 기차가 서울쪽으로 가는것이다. 당황했으나 시간이 없었고 열차번호는 맞으니 운에 맏기고 탑승한다. 당연히 강원도는 제천보다 동쪽에 있을거라 생각했던게 오류였다. 약간 서울쪽으로 그리고 더 위에 원주가 위치하고 있었다.
주로 혼자다니지만, 그래도 같이 다니는 경우도 많다. 그게 산이든 여행이든. 그럴 경우 아주 자주 간혹 다른 여행 스타일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상대방이 그렇다.
'차를 놓치면 다른걸 알아보면 되고 없으면 좀 기다리면 되고 그래도 일정이 안맞으면 다른거 하면되고. 외국도 아닌데 무슨일이 있겠어?'.
여행에 대한 내 가치관이다. 이런 마음으로 다닌다면 모든 예상밖 상황이 훗날 회자할 만한 에피소드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같을수는 없다는걸 잘 안다.
원주역에서 치악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원주역을 등지고 도로까지 나온다음에 왼쪽으로 가서 버스를 타면 된다. 41번 버스가 3~40분 주기로 있다. 안내표지에는 하루 4대라고 나와있는데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자주 온다고 한다. 실제 30분 정도있다가 버스가 도착했다.
'악'소리 난다는 치악산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원주역에 있는 김밥헤븐이 문을 닫아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으로 왔다. 밥을 못싸갈 경우 더덕구이같은 안주라도 사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산나물을 넣어 만든 김밥을 팔고있다. 한줄에 2000원 인데 그 아삭함은 잊혀지지 않는다.
매표소 근처에 번데기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에 이끌려 자리를 잡고 번데기 안주로 더덕을 시킨다. 그리고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막걸리도 같이 한다. 아침에 새로 만든 번데기여서인지 탱글함이 살아있었다. 기존에 내가 알던 번데기의 식감보다 우수했다. 더덕은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막걸리를 더 먹을뻔 했다. 매표소 앞에 이 집이 음식을 잘 하는것 같았다.
이렇게 테라스에서 신선놀음 중이다.
#더덕구이 #치악산테라스 #번데기 #그냥-여기서-술이나-마시고싶다
비로봉에 다다르는 코스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다리병창길이고 다른 하나는 계곡길이다. 계곡을 따라 가는길이 계단도 적고 난이도가 다소 낫다고 하여 사다리병창길로 가기로 한다.
전일 비가온 덕분에 물줄기가 세차다. 오대산 이후로 이렇게 많은 물을 본적은 없던것 같다. 이래저래 오늘은 운수가 좋은것 같다.
구룡사 입구. 곧 있을 부처님오신날로 많은 불자들이 모여있다.
여느 구름다리와는 다르게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안정감이 존재한다. 양옆에 지지를 하는 부분이 있어 위아래로는 출렁거리지만 옆으로는 이동하지 않아서인듯 하다. 다음주말 초팔일을 맞이하기 위해 산 곳곳에 연등이 설치되어 있다.
물에서 뿜어지는 냉기가 뜨거운 햇살을 식혀주고 있다.
세렴폭포.
매우 앙증맞은 폭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까지만 구경하고 내려간다. 이곳을 기점으로 비로봉까지 가는 코스가 갈린다.
계단퍼레이드. 역시 계단이 많을거라 했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처음에는...
자연적으로 바닥이 튀어나와 마치 사다리처럼 보인다 하여 사다리병창길 이다. 언듯보면 별거 아닌것 같지만 그 넓디 넓은 치악산(혹은 한국의 모든산에서)에서 이곳만 솟아났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꽃과 잎사귀가 너무 예쁘다. 그 앞에 놓여진게 계단만 이니었다면 더 좋았을걸.
산나물 김밥. 만일 김밥헤븐에서 김밥을 사왔더라면 이 맛을 못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불운이 아닐수도 있다. 매 순간 우리앞에 놓여진 여러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하지 않은것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후에는 그 다음의 선택안이 기다린다. 반드시 처음에 하는 선택이 옳은 것이라 단정할수 없다. 김밥헤븐이 장사를 안한 덕(?)분에 산나물 김밥을 먹는 훨씬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불운한 것으로 할지 말지는 본인 스스로가 정한것이다. 그러니 불운하지 않기 위한 선택 역시 택할 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산이든지 생수 한통이면 가능했는데.. 오랜만에 산행인지 산이 험한건지 벌써 한통을 비웠다. 허기를 달래려 김밥을 먹는데 새 한마리가 눈앞에 와서 재롱을 떤다. 금방 가겠지 하면서 멍하니 보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눈을 깔라고 하는것 같다. 신기하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몇장 찍으니 '팬서비스는 여기까지' 하면서 날라간다. 산새는 경계심이 많아 인간들 근처에 가지 않고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놀라 날아가는데 인간이나 동물이나 어디가나 특이한 놈들은 있나보다.
어서와. 끝난줄 알았지?
널 기다렸어. 난 계단이라고 해. 구면같아 보여도 초면이란다.
#계단 #아까온데-같은데-또-계단
똑같은 나무가 무성한데 이쪽은 약간 회색빛이 난다. 마치 불났던 곳처럼.
치악산 버스 운행 정보. 등산로 입구에서 얻을수 있다.
나름 북쪽이라 그런지 잎 피는 시기가 늦다. 노랑꽃들이 지고 연두 잎사귀들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다.
치악산 정산 전의 view point
비로봉 위에는 돌탑들이 2개 있다. 저정도의 치성이라면 반드시 산신,령님이 들어주셨을거라 확신한다.
아마 저쪽은 원주일것이다. 당일 미세먼지가 좀 있어서 전체적으로 시야가 불투명했다.
안녕 비로봉 1,288m
이곳이 쥐넘이재이다. 쥐가 절을 쫒아냈다. 이렇듯 우리는 전래동화를 통해서 협업을 배운다.
올라가는 길은 3시간반인데 내려가는 길은 2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가파른 길이다. 정말 도가니가 나가는줄 알았다. 분명한것은 내려가면서 내내 '이쪽으로 올라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를 되뇌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입석사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복장을 봐서는 그냥 가볍게 올라온것 처럼 보이는데 일행끼리 나눈 얘기는 '분명 남자가 여자랑 헤어지기 위해 데려온것이다' 로 결론 지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으로, 굳이, 여자친구를, 데려올리 만무하다.
사진에서 보는 경사보다 더 가파르다. 이럴경우 뒤로 내려가면 훨씬 수월한데 긴 거리때문에 주의하지 않고 막 내려가는 경우가 있다(실제 내가 그랬다). 하지만 위험한 것이 오른쪽 사진처럼 파인곳이 많기 때문에 굴러서 걸어갈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산은 하산때 조심해야 한다.
센스있게 등산화 세척 장소도 있다.
입석사 입구
원주에서 입석사로 올경우 흥양초교행 버스를 타면 된다. 반대로 입석사에서 원주역까지는 하루 8번 이나 존재한다.
청주까지의 기차표는 오후 5시가 막차인지라 버스를 탈수밖에 없었다. 이 버스노선의 경우 버스터미널에 들리지 않는다. 터미널로 가고자 할 경우 중앙시장에서 하차하여 환승하거나 택시를 타면 된다. 4000원 정도 나온다.
이 택시비가 기억이 날수밖에 없는것이, 중앙시장에서 내려 택시를 탈경우 청주행 직행 버스를 놓칠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다리를 건너자 마자 택시를 잡기로 하고 무작정 버스에서 내렸다. 택시를 잡고 가장 최단으로 가주길 요청하고 작전을 짰다. 한명은 바로 내려 승차권을, 다른 한명은 탑승구로 가서 버스를 잡는다. 그리고 남은 인원은 택시비를 지불하고 바로 승강장으로 간다. 만일 버스에서 내려 택시가 안잡히거나 다음 일정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우린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ole! 모든게 들어맞아 버스에 탔다. 아뿔사. 일행이 4명인데 자리가 3개밖에 없다.
'저는 괜찮으니 먼저들 가세요'
라고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차마 뱉지 못했다. 왜 그래을까. 혼자서도 잘 다니는 나인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들이 진짜 갔다면 서운할수도 있다는 마음이었을것 같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줄이야..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그런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도 했던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버스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겨봤자 소용없고 화내봤자 내 손해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승객이 타지 않길 기도하며 우리는 버스를 지켰다. 그 모습이 측은했는지 기사분은 보조 의자를 내줬고 처음으로 고속버스 보조석에 앉는 행운(?) 을 누렸다. 사람은 살면서 황당한 일을 당한다. 호기어린 시절에는 강경하게 대항했고 당사자를 당황하게 하여 강제로 권리를 찾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안되는건 안되는 거고 최대한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물론 상대가 안하무인과 같다면 일부러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오히려 미안하게 내가 그의 상황을 이해해준다면(혹은 이해하는척 하거나) 혹시 누가 알까. 소동으로 얻은 행운보다는 상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배려로 얻은 행운이 더 따뜻하다.
하지만 그 행운이 단 10분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보조석은 정확히 90도 각으로 내 허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2일은 근육통으로 고생했는데 그(?)의 역할이 컷다.
모두의 안전 산행을 축하하며 대창을 먹고 입가심으로 곱창을 먹는다.
-. 치악산 비로봉 산행
-. 일자 : 2016년 5월
-. 대중교통 이동 : 청주(오창)->원주 (기차), 원주->청주(버스)
-. 소요시간 : 약 6시간
-. 난이도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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